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윌리엄 데이비스 / 책세상 / 비문학 / 362 / 20171227




뭔가를 모은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독서였다. 모은다는 행위에서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가 있었으리라는 지레짐작만 들었을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제목이 무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이다. 근데 읽어보니 제목이 탁월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내 구미를 당겼던 가장 큰 이유는, 프로필란의 작가 사진 때문이었는데 그는 시리얼 상자 컬렉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데, '왜? 왜 때문에 이런걸 모으는 걸까?'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보통은 책이나 음반, 문구류 등을 모으는데, 그가 모은 것들은 시리얼 상자, 토마토 깡통 라벨, 디스펜서, 병뚜껑, 티켓 봉투 등등 온갖 것을 모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맥시멀 라이프라고 들어 봤는가? 그는 무엇을 모으든 그것의 최대치를 모았다. 온갖 종류의 라벨 1만 8,000개, 시리얼 상장 1,579개, 우편봉투 속지 800개, 병뚜껑 500개, 신용 사기 편지 141통...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수집한다. 그것도 무척 열정적으로. 


그는 얘기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는 수집 충동은 극도록 풍요로운 물질사회에서 우리가 받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다수가 각자의 개인사에서 받는 상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고. 수집이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그 효과는 충분할 정도로 좋다고. 공감되는 구절이었다. 그가 모으는 것에 비하면 내가 모으는 것은 정말 새발의 피이지만, 모으는 행위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가족 전통의 오랜 유산이라고 추정되는 우울한 성격을 수집함으로써 극복하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집하는 행위는 무언가를 채워넣는 것이다. 마음 속의 허전한 빈 공간을 물건으로 채워넣음으로써 공허함을 달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러한 수집들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했던 시간들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독여주고 싶은 이야기였고,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모으고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매우 특별한 것들이 된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수집가가 완성한 세계는 여전히 갈망되는 모든 것의 집대성이자, 그것을 여기에 위치시킨다Place It Here는 기대감의 총체다. 대개 수집은 기념품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내 컬렉션이 지향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오기를 기대하는 어떤 순간, 앨범에 빈칸이나 부족한 것인 남아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세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컬렉션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45)


수집은 소유하는 능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행위이고, 타자성을 통제하는 훈련이며, 궁금적으로는 일종의 기념비적 건물로서 사후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흔히 한 컬렉션에서 그 컬렉션의 수집가를 읽어낼 수 있고, 그다음으로는, 비록 대상물 자체에서 읽어낼 수는 없더라도, 대상물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전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 수집가를 읽어낼 수 있다. 수집은 삶을 써나가는 행위이다. (91)


만약 수집가들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내가 레어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특유의 수집 전략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가장 현명한 투자자가 되거나 아니면 (내가 원해 마땅한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에 사로잡힌) 가장 위대한 멍청이가 된다. (101)


다다이즘의 경이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예술이라니.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하는 것)은 내게는 행방과 같았다. (103)


텅 빈 오후, 아무 일 없는 저녁 시간, 홀로 지내는 밤, 나는 이 모든 공허함은 결국 아무것도 이야기할 게 없는 나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사춘기의 흔한 악몽이 그렇듯,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두려워 스스로를 방어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가 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유함으로써, 현실에서는 결코 의미 있는 것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 당신이 내버리는 모든 것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여기에 슬픈 패러독스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203)


내가 낭비한 밤 시간에 대해 당신이 나를 동정해주면 좋겠다. 내가 풀칠을 하며 바친 시간들, 내 끈적거리는 손가락으로 그 섬세한 종이들을 서툴게 다루던 시간들에 대해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면 좋겠다. 나는 현재의 나 자신(내가 가진 모든 것) 때문에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나 자신을 풀칠해 붙여넣었고, 내 에너지의 일부에 고삐를 채웠고, 나 자신의 일부를 격자 속에 단단히 고정했음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무리 기괴해 보이더라도 부디 그렇게 해주기를. (238)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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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 민음사 / 소설 / 160 / 20171224


소설 동물농장은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일단 그런 해석들은 한쪽에 제쳐두고 역사와 정치에 무지한 내가 아주 솔직한 '나만의' 감상평을 써보고자 한다. 자신은 없지만 느낀바는 있다. 일단, 읽는 내내 불쾌했다. 


메이너 농장의 주인 존즈씨를 쫓아낸 동물들은 메이너 농장을 동물농장으로 명명한다. 혁명이 휩쓸고 간 자리에도 규율과 규칙은 필요한 법이다. 돼지들은 헛간 벽에 <일곱 계명>을 적고 지키기로 한다. 하지만, 돼지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나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존즈씨를 쫓아냈듯 몰아낸다. 그리고, 나폴레옹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동물들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폴레옹이 일곱 계명에 있는 일을 어기는 듯 했는데(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거나 존즈씨처럼 옷을 입거나 침대에서 잤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동물들은 염소 뮤리엘에게 다시 일곱 계명을 읽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교묘하게 바뀐 것 같다. 근데, 그것이 바뀐 것인지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그들은 분간할 수가 없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 거대한 이 세계를 하나의 작은 농장에 담았다. 동물들의 다양한 성격 혹은 성향 만큼이나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한다. 나는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세계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내가 속한 어떤 조직이었다가, 대한민국이었다가, 세계였다. 


1945년에 출간된 이 책은 현재 읽어도 그것이 '과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동물농장은 진심으로 과거이고, 현재며, 미래였다. 잘못된 것을 알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불쾌했던 이유는 동물농장이 내가 속했었던 어떤 곳과 너무 비슷했고, 무지한 동물들은 마치 나 같았다. 체제에 대한 무지, 인생에 대한 무지, 일에 대한 무지. 무지했던 나를 보았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진짜 중요한 것을 놓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123)


그리고 찾아본 소설에 대한 정보. 알라딘 추천글(전영수 교수)의 글로 대신한다. 


대표적인 풍자·우화소설이다. 스탈린 권력시대의 소비에트가 풍자 대상이다. 1945년, 즉 2차 대전직후에 출간됐는데 하마터면 묻힐 뻔했다. 당시 영국과 소련은 동맹국으로 정치적 검열과 지적인 우둔함이 연이은 출간 거절로 되돌아왔다. 그만큼 당대의 실존인물, 사회제도, 정치배경이 놀랍도록 동물농장의 스토리와 일치한다. 인간을 몰아낸 동물농장 혁명세력의 정치장악과 권력독점의 스토리는 작가를 명실상부한 거물스타로 변신시켰다. 책은 권력집단의 부패귀결에 대한 비판은 100년 전 소비에트 특정 시대를 넘어 현재의 자본주의·민주주의로 움직이는 지금의 국가체계에서나 매한가지인 까닭이다. 요컨대 동물농장의 풍자에서 얻어지는 유효성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진정으로 멋진글이다. 가슴 속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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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핏 접신기

2017.12.29 11:11 from 사진일기

크로스핏을 배워보고 싶게 

너무 잘쓴 글(퍼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89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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