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편에서 윤태호 작가가 전한 이야기


컴퓨터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사진들. 그 당시 너무 공감이 되어, 아이패드로 캡쳐 해놓은 사진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좋은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그를 바라보는 다른 패널들과 무한도전 멤버들의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나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많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미덕인 양 '독설'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나쁜 기억 지우개>편에서 윤태호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아니였다. 그것은 위로였다. 막연한 불안감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삶이 아닌 일상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또, 우리에게 일어난 좋지 않은 상황, 이를 테면 무너지는 일상은 우리의 탓이 아니라고 우리를 위로한다. 


참 어른이 해주는 멋진 이야기였다. 나 역시 헛헛하고 허전한 삶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여행도 다녀오고, 돈도 벌어봤지만 - 진짜 행복은 탄탄한 일상속에서 나온다는 작가의 말에 100번 동의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라디오를 듣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상은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을 선사한다. 


직업이 꿈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물론 직업이 꿈인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꿈 자체가 직업이 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윤태호 작가도 마치 꿈을 이룬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말한다. '아닐 수도 있다고',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는 중요한 건 그냥 만화가가 아닌 '어떤 만화가가 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삶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기존에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던 꿈과 직업,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한 멋진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편에서 압도적으로 돋보이는 멋진 이야기였고, 나는 기억하고 싶어 그 조각들을 남겨두었다. 




Posted by 야무진리지 트랙백 0 : 댓글 0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 에세이 / 215 / 201803






커트 보니것을 읽었다. <제5도살장>을 읽기 전에 그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에세이로 시작했다. 그는 소설가이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졸업식 연설자이기도 하다. 그는 1960년대 청년들의 언더그라운드 영웅이었다. 그의 졸업식 연설문을 모아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가 출간되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때 대학을 떠나 보병대에 배치되었다가 독일군에 잡혀 드레스덴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보니것은 '제5도살장'이란 이름의 지하 고기 창고에 격리되어 있다가 우연히도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독일군과 연합국 사이에 있었던 전투. 이때 독일군이 최후의 공세를 펼침) 훗날, 그것은 그의 소설로 재탄생되었다. 



이 책이 졸업 연설문인 만큼 [졸업을 앞둔 너에게]라는 부제가 붙는데, 그렇다고 졸업을 앞둔 사람에게 굉장히 유익하다고는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뭐랄까. 미국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가 처한 현실과 함께 문화를 이해해야 내용이 들어온달까. 물론 미국인 특유의 익살스러운 블랙 유머들과 언어유희, 그의 허무하고도 비판적인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있다. 







아이들을 일곱이나 두었던 보니것. 그는 아이들이 이 행성에 대해 불평할 때마다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 조용히 해! 나도 여기 좀 전에 도착했어. 내가 므두셀라**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너보다 오늘 뉴스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해? 틀렸어."(29)(**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969년 동안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나서 하는 이야기가 사실 너무 좋았다. 


우리는 대체로 동일한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약간 더 나이든 사람들은 약간 더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랄까요? 그들은 오랫동안 종종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았고, 그 점에서 칭찬을 듣고 싶어합니다. 약간 더 젊은 사람들은 약간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 지나치게 인색합니다. 

약간 더 젊은 사람들은 약간 더 나이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랄까요? 제 생각에 다른 무엇보다 그들은 인정받기 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심의 여지 없는 성인 남성이고, 여성임을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약간 더 나이든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는 데 지나치게 인색합니다.(29) 


생각해보면 동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 세대와 엄마/아빠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의 갈등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칭찬하지 않는 것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너무 다른 세계를 살고 있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원망의 화살을 서로에게 던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칭찬하고 인정하는 일. 쉽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보니것의 혜안으로 본 세대가 원하는 것을 읽고 반성하고 다짐했다. 표현에 좀 더 인색하지 않기로. 좋은 이야기들에 너그럽기로. 



비슷한 이야기가 또 등장한다. 마크 투웨인에 관한 이야기다. 


마크 트웨인은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지만 노벨상은 못 받았죠. 그런 그가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네 마디를 대답으로 떠올렸습니다. 저도 그 답이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마음에 들 것입니다. 

"우리 이웃의 좋은 평가" (57)



그렇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착한 말, 진심어린 칭찬이 필요할 뿐.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기도하고, 제목이기도 한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는 그의 삼촌인 알렉스가 외치던 얘기였다. 알렉스가 개탄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진 못하는 사실이었는데, 그래서 삼촌은 행복할 때마다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각별히 노력했다고 한다. 한여름에 사과나무 아래서 레모네이드를 마실 때면 삼촌은 이야기를 끊고 불쑥 외쳤다고 한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고,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삶의 무게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는 그가 겪은 전쟁에 대해서 '전쟁을 나가봐야 진정한 남자지'라던가, '재앙(대공황,제2차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등등)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성인이 아니지'와 같은 바보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어른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특히 손자들에게 '나한테 뭐라고 하지마. 나도 여기 방금 도착했으니까.'로 표현되는 외계인과 같은 언어는 모든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10대, 20대, 30대의 나를 되돌아보면, 별로 다를게 없다. 딱히 철이 들었다기 보단 경험을 토대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간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난 여전히 나이다. 이러한 경험은 40대, 50대, 60대의 내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예측하게 한다. 그래, 나이가 약간 많고 적을 뿐. 우린 그냥 똑같은 인간일 뿐인걸. 



'우리에겐 아직 음악이 있다'라는 파트의 내용들도 참 좋았다. 살아가는 게 정말 힘겹다고 느껴질 때,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다. 아직 세상을 살만하다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음악은 영화나 책에 비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큰 효과를 내는 장르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흘려듯 던 노래도 나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크게 감동으로 다가오거나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음악이 내 곁에 있단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커트 보니것 책은 몇 권 더 읽어 보고 싶다. 더 알아보고 싶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Posted by 야무진리지 트랙백 0 : 댓글 0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 문학동네 / 소설 / 606 / 20180109




10일 정도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6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의 소설이었다. 소설이 운명과 분노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져 있는 것도 흥미로웠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딱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의 2015년 추천 도서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다른 이들의 리뷰에서 오바마가 추천한 책인데 의외로(?) 너무 재밌었다, 라는 내용이 많아 읽어보게 되었다. 아마 사람들은 오바마가 뭔가 심오한 책을 추천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재밌었다. 읽는 내내 로토와 마틸드의 결혼 생활이 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졌고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문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가벼울 수도 있고, 별거 아닐 수 있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하니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작가의 능력에 새삼 감탄한다. 


운명과 분노는 운명에 따라 빛나는 삶을 산 로토라는 남자와 분노의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감추고 사는 마틸드라는 여자의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싸웠을 때는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는 말처럼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두 가지 관점에서 같은 사건 혹은 다른 이야기들(개인의 삶)을 전개해 나간다. 조금은 무모하게, 그리고 즉흥적으로 시작된 결혼 생활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감춰져 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질문을 쏟아내고 상상해나가며 소설에 빠져든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다. 


책 뒷면에 쓰인 글귀처럼 '거짓에 싸여 있는 사랑이, 진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Yes'라고 답할 수 있다. 마틸드는 로토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했고, 그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온전히 완전한 사랑을 해야만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마틸드는 로토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어쨌든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결국에,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혼의 다른 모습 중 하나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에 순응하는 삶이건, 분노에 감춰진 삶이건 힘든 건 매한가지였고, 그 둘 모두에겐 그럴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었다. 그것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동정하거나 끌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으며 로토와 마틸드의 어린 시절 삶을 통해 독자는 샐리와 레이철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많은 것들로부터 그들이 안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처음에 로토가 마틸드에게 청혼하던 그날 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꼭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만, 진실을 이야기해야만 사랑인 것은 아니다.(물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 어릴 적, 사랑 없는 결혼은 끔찍할 거라 생각했는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 결혼이 꼭 끔찍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상상에 불과했다. 


어린 마틸드. 어쨌든 그녀는 어렸다. '악함'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며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련의 사건에 의해 완전히 꼬여버린 삶. 나는 그녀가 왜 그리도 자신만의 공간(집)을 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운명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분노의 삶을 사는 것일까. 내가 마틸드에 더 공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분노의 삶에 좀 더 가까이 있지 않나 싶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장 몇 개를 옮겨 본다. 



그가 받아들인 건 오로지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이야기, 도덕적 엄격함, 순수함을 갈구하는 광적인 열정. (31)


그러고는 플로리다의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을 앞서려는 듯 최대한 빠르게 페달을 밟았지만, 슬픔은 늘 더 빨라서 금세 그를 다시 앞질렀다. (32)


그들은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를 쫓았고, 콜리만이 외따로 떨어져 침울한 표정으로 나머지 친구들이 만드는 끝없는 원을 지켜보았다. (37)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문제. 태양의 위치에서 보면 결국 인류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그저 회전하며 깜빡거리는 빛일 뿐이다. 가까이서 보면 도시는 다른 매듭들 사이에 위치한 하나의 빛의 매듭이고, 더 가까이서 보면 건물들이 서서히 분리되고 희미한 빛을 뿜는다. 새벽녘의 창문에는 변함없이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체적인 것은 한 곳에 초점을 맞출 때에야 보인다. (69)


삶을 시작할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인생을 끝낼 수 없다면 인간으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246)


[비극, 희극. 그건 오로지 관점의 문제다] (304)



Posted by 야무진리지 트랙백 0 : 댓글 0